지역다움을 발견하고 기록하는, 로컬콘텐츠 기획자





시골에서도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을까?

시골살이를 꿈꾸다가도 ‘일’을 생각하면 머뭇거려지게 됩니다.

도대체 다른 사람들은 시골에서 어떤 일을 하면서 살고 있을까요?

 

?당신이 꼭 알아야 할 시골 직업 (줄여서 '당알시')? 에서는

나만 알고 싶은 요즘 시골 직업들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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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님 안녕하세요. 간단히 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고래실에서 잡지 <월간 옥이네> 제작과 기타 문화 기획 업무를 진행하고 있는 박누리입니다.

 

고래실에 입사하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저는 2010년 옥천신문사 취재기자가 되면서 옥천에 오게 됐어요. 기자로 살면서 이곳저곳을 두루 돌아디니며 지역사회를 가까이 만나고 또 깊게 배울 수 있었어요. 그러면서 한편으론 제 나름의 고민과 숙제도 만날 수 있었어요. 신문이 보도를 통해서 해결해가는 지역 문제도 있지만, 반면 거의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부분들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요. 이를테면 지역의 문화와 관련한 일들이 그랬어요. 옥천이 가진 여러자원들을 잘 연결하면 우리 지역만의 재미있는 문화 콘텐츠가 만들어질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생겼죠. 그런 고민들이 이어져서 지역 문화 활동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고래실에 입사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고래실에서 일하면서 어떤 점이 가장 좋았나요?

기자와 문화기획자로서의 삶을 모두 살 수 있다는 것?! 로컬 매거진을 만들면서 지역사회를 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공동체 내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경험도 할 수 있어요. 덕분에 기자로 살면서 제 시야가 넓어지고 세계가 확장되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좋았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과 함께 의미 있는 변화와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게 가장 즐거운 부분이고요. 동일한 지역에서 생활하지만 매일 보던 풍경이나 사람을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도, 또 이 일을 통해 만난 인연이 지속적으로 연결되어 함께 재미난 일을 도모해 볼 수 있다는 것도 이 일의 큰 매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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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하고 계시는 <월간 옥이네>에 대해 좀 더 설명해주세요.

월간 옥이네는 옥천의 사람과 공동체, 문화를 담는 잡지예요. 농업 전문 잡지는 아니지만 매 계절의 농촌 풍경을 농민 인터뷰, 사진 등으로 담아오고 있어요. 사실 농촌에 살고 있는 이들조차 농촌 풍경에 익숙하지 않을 정도로, 현재 우리의 삶은 농(農)과 너무 멀어진 상태이잖아요. 아이러니하게도, 농업과 농촌, 농민이 없다면 우리 삶이 지탱될 수 없음에도 말이죠. 그래서 소농 인터뷰와 로컬푸드, 농촌 풍경 등을 꾸준히 담으려고 노력 중이에요.

이외에 지역의 다양한 사람들 이야기를 담아요. 지역 유력 정치인이나 토호, 지역에서 큰 사업을 벌이는 사람들이 아니라 장터 할머니, 골목에서 오래 가게를 운영해온 상인, 작은 학교의 어린이, 이주여성, 농민, 청년 등의 이야기가 옥이네에 실려요. 바로 옆에 있지만, 너무 가까이 있어서 소중함을 알지 못했던 이야기를 발굴해 담는 게 옥이네의 기본 취지입니다. 나아가 농촌 공동체, 옥천이라는 지역사회가 더 살기 좋은 장소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떤 것을 함께 할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하는 매체이기도 하고요. 그런 고민들이 때로는 지면으로, 때로는 고래실이 기획하고 진행하는 문화행사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월간옥이네는 매월 바뀌는 표지 일러스트가 인상적이에요. 표지는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표지는 우영 작가님께 부탁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간에는 옥이네 특집 주제를 중심으로 표지를 만들어왔는데, 최근에는 옥천의 풍경을 표지에 담고 있어요. 그때그때 참고할 만한 이야기나 사진 등을 공유하며 표지 방향을 잡고 있습니다.

 

지역에서 매월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긴 호흡으로 발간하고 계시는 게 정말 신기해요. 소재는 어떻게 정하게 되나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제가 늘 하는 말이 있어요. “서울에 100개의 이야기가 있다면 지역에도 100개의 이야기가 있다”고요.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정말 이야기는 무궁무진해요. 당장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갖고 있는 이야기만 해도 책 한 권은 거뜬히 나올 수 있거든요.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지역이니, 그 속에서 얽혀지는 이야기들, 파생되는 이야기들은 훨씬 더 많아지는 셈이죠.

특집 주제의 경우 옥이네 편집국 성원들이 관심 있어 하는 주제들로 정하게 되는데,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에만 맞춰서는 절대 옥이네 특집이 될 수 없고요(웃음) 어디까지나 옥천이라는 지역을 기반으로, 이 지역만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연결할 수 있는 주제들을 찾고 있습니다. 때로는 그런 주제가 굉장히 보편적인 이야기가 되기도, 옥천만의 독특한 문화와 역사를 담는 이야기가 되기도 해요. 현재까지 63호(2022년 9월호 기준)의 옥이네를 만들면서 특집 주제만도 벌써 63개가 쌓여왔는데요. 옥천 수몰마을 이야기, 길고양이, 오래된 나무, 작은 학교, 옥천 말(지역말) 등 다양한 주제가 옥이네 지면을 채우고 있습니다.

특집 외에는 앞서도 설명 드린 ‘사람’ 이야기에 집중합니다. 청소년이나 청년, 어린이,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저희 지면의 주인공이 될 수 있고, 지금까지 그래왔어요. 평소 옥천을 돌아다니면서 만나게 된 사람들, 공동체 활동 속에서 찾아내기도 하고, 드물지만 누군가 ‘인터뷰 좀 해달라’며 요청을 주시기도 해요. 기본적으로는 ‘평범한 우리 이웃’의 이야기를 담는다는 것이 저희 목표이기 때문에 길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이 저희의 취재원이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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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잡지 기획부터 발간 되기까지 전체 프로세스가 궁금해지네요.

편집회의/취재 아이템 선정 -> 현장 확인 및 취재 진행 -> 기사 작성 -> 지면편집 및 교정교열 -> 최종본 확인 후 인쇄 -> 발송

월초에 편집회의를 거치면서 이달의 옥이네 기본 방향을 정하고요. 곧바로 편집회의에서 결정된 내용이 실제 취재가 가능한지 취재원을 찾고 연락하며 확인합니다. 취재가 가능하면 바로 섭외해서 취재를 진행하고요. 보통 중순까지 기자들이 개별적으로 취재 활동을 진행하고 월말이 되면 기사 마감에 들어갑니다. 각각 기사 작성이 끝나면 편집 디자인 작업에 들어가고, 편집된 지면은 그때그때 확인해서 교정 작업을 함께 진행합니다. 이후 전체 지면 편집이 모두 끝나면 최종 교정 작업을 진행하고 이후 인쇄소로 넘겨 잡지 한 권이 완성됩니다. 저희는 아직 판매 부수가 많지 않아 발송 작업을 저희가 직접 하고 있는데요. 잡지가 옥천에 도착하면 발송을 위한 포장 작업을 진행하고, 이후에는 우체국에서 집배원분들이 독자님들의 주소지로 배송을 해주십니다.

 

로컬 매거진이 로컬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요?

현재 한국은 지역불균형이 굉장히 심각한 상태인데요. 이 때문에 서울이 아닌 지역, 도시가 아닌 농촌에 살게 되는 경우 사회 구조적인 차별을 받게 됩니다. 지역에 사는 그 자신조차 지역사회를 ‘제대로’ 볼 수 없는 경우가 많고요. 이처럼 왜곡되고 편향된 지역에 대한 인식을 바로 잡는 데 로컬매거진의 의의가 있다고 생각해요. 지역에는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지, 공동체가 지역사회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또 지역의 자원은 어떤 것이 있는지 등을 로컬매거진을 통해서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죠.

이런 것을 바탕으로 지역사회가 ‘더 살기 좋은 공동체’로 나아가는 기반을 닦을 수 있기도 합니다. 월간 옥이네가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바로 이런 모습까지를 모두 포괄하는 것인데요. 기존의 미디어로는 볼 수 없던 지역사회 이야기를 다룸으로써, 지역 공동체의 문제를 함께 진단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겠지요. 어쩌면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안하고 직접 실행할 수도 있겠고요.

이런 실질적인 변화 외에도,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는 데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옥이네 한 독자님께서 “옥이네를 보면서 지역 공동체와 이웃을 한 번 더 돌아보게 됐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물건을 사러 간 상가에서 불친절한 상인을 만나게 됐을 때, 예전에는 ‘참 불친절하네, 다음엔 오지 말아야겠다’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이 옥이네를 보고 난 뒤엔 ‘오늘 날이 더워 힘드셨나 보다, 오늘 가게에 무슨 일이 있으셨나 보다’하고 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생각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셨다고요. 이 독자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로컬매거진의 역할을 또 한 번 상기하게 됐습니다. 저는 늘 ‘아주 작은 것에서 삶의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바로 옥이네가 하는 일이 그런 일이구나 하고 스스로 뿌듯함과 기쁨을 느꼈던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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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님이 생각하는 로컬 잡지 기자란 어떤 사람일까요?

기자란, 남의 이야기를 편견 없이 그대로 듣고 가능한 왜곡 없이 기록하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살기 좋은 공동체를 함께 찾아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현재 우리가 익숙하게 접하는 대부분의 매체에서 ‘기자’란 그저 어떤 사건이나 상황을 전달하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지만, ‘진짜 기자’라면 사건이나 상황을 깊숙이 들여다보고 맥락을 제대로 파악해 기록하면서 그 기록이 지역사회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람이어야 하죠. 나아가 그런 기록이 살기 좋은 공동체, 약자를 배제하지 않는 공동체,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만드는 데 어떻게 기능할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하고요. 
여기서 또 자연스레 문화기획자와도 연결이 될 수 있을 거 같아요. 지역의 문화는 이미 오래 전부터 서울 중심, 도시 중심 문화에 잠식돼왔는데 이 속에서 ‘지역다움’을 함께 찾아갈 수 있어야 해요. 지역에서 기자로 일을 하다 보면 이런 고민도 자연스레 함께 갖게 돼요. 풀뿌리 언론에 종사하는 기자들은 종종 ‘좋은 지역언론 기자는 동시에 좋은 문화기획자이다’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바로 이런 맥락에서일 거예요.

 

기자와 문화기획자라. 사실 로컬에서는 여러 가지 일을 해야만 하는 순간이 많을 것 같아요. 그러다보면 전문성에 대한 고민도 생기는 순간이 올 것 같은데, 누리님도 그런 고민을 갖고 계신가요?

맞아요. 전문성이라는 게 뭘까, 늘 고민하게 되는데요. 현재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열심히 해왔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나만의 전문성은 확보되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신문사에 근무할 때부터 취재나 기사 작성 뿐만 아니라 사진, 영상, 편집, 교정교열 등의 매체 제작 전반을 비롯해 대외 사업 부분까지 다양한 업무를 동시에 진행해왔는데 이것이 제가 성장하는 데 상당히 큰 도움을 줬다고 생각해요. 생전 처음 맡게 되는 업무나 현장에 가게 됐을 때도 좀 더 순발력 있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도 길러졌고요. 다양한 일을 하게 되면서 동시에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되고 다양한 상황에 부딪혔던 경험이 ‘일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던 듯합니다.

물론 가끔은 당장 해야 할 일의 양이 무지막지하게 쏟아질 때가 있고, 일 하나하나에 제가 원하는 만큼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못하게 될 때도 있어요. 이런 때가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순간인 거 같아요. 그렇지만 ‘이 역시 지나가리라’, 하다 보면 내 또 다른 경험치를 높여주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물리적 한계 안에서 할 수 있는 한의 일을 조절하며 해내는 것도 성장의 바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로컬 잡지 기자 일을 잘 하기 위해서는 어떤 역량이 필요할까요?

좋은 문화기획자라면 지역사회를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배울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하고, 이를 통해 그 지역만의 가치를 찾고, 이를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해요. 조금 더 개인의 성격 특성과 연결해서 이야기하자면, 사람 만나는 것을 즐거워하는 사람, 동시에 편견이 없는 사람, 일 속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사람, 사람과 공동체‧지역사회를 존중하며 이들 모두를 자신의 스승으로 삼을 수 있는 사람 정도가 되겠네요.

실무적으로는 글쓰기를 좋아해야 하는데요. 이때 혼자 보는 글이 아니라 ‘사회적 글쓰기’라는 점도 기억해야 해요. 글을 통해 사람과 사람, 지역사회와 공동체를 연결하는 일임을 늘 기억하고 개인적인 감상에 빠지는 글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더불어 사진 촬영도 취재 기자가 함께 진행하기 때문에 사진에 관심이 있다면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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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를 만드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취재를 나가게 되면, 아무래도 농촌 지역이다 보니 소소하게 텃밭을 가꾸는 분들부터 크게 농사를 지으시는 분들까지 다양한데, 늘 무언가 먹을 것을 손에 들려서 보내주세요. 비가 많이 오거나 가뭄이 심해 흉작일 때는 가능한 받아 오지 않으려 하지만, 안 받으면 진심으로 섭섭해 하시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아오게 될 때도 있거든요. 달래 한 봉지, 대추 몇 알, 복숭아 한 상자 등 이렇게 들려 보내주시는 게 늘 감사하고 현장에서는 일상적으로 겪게 되는 에피소드입니다. 어떨 때는 집에서 직접 된장찌개에 밥을 차려주시기도 하고요. 그러면 저희는 맛있게 먹고 오기도 하지요(웃음)

 

누리님의 앞으로의 로컬 잡지 기자이자 편집국장으서의 꿈이나 목표가 있으신가요?

일단은 월간 옥이네를 잘 만드는 것이 꿈이자 목표이고요. 사실 저는 어떤 큰 꿈이나 목표를 설정해서 살지는 않는 편이라(MBTI P형이에요) 그때그때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아왔는데요. 다만 언제나 제가 살고자 했던 삶의 가치를 따라왔던 것만은 확실했던 거 같아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기자로, 또 문화기획자로 살면서 지역사회에 조금이나마 더 기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만 즐거운 게 아니라 동네 사람들도 함께 즐거울 수 있는 일을 계속 찾아가려고 합니다. 나아가 단순한 ‘즐거움’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정말 즐거운 삶을 살기 위해 들여다봐야 할 것들을 발굴하고 조명하는 일을 계속 해나가고 싶어요. 때로 느리게 걷기도 하고 잠시 앉아 쉴 때도 있겠지만,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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